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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일본소설

진상 - 조금 아쉬운 단편들

 
진상
〈진상〉은 우리 주변에 널려있는, 범상치는 않지만 얼마든지 언제라도 우리 자신에게 일어날 수 있는 이야기로 구성돼 있다. 팍팍한 세상에서 21세기 현대인들이 겪고 있는 가장 피부에 와 닿는 주제로 책을 채웠다. 모두 5가지 이야기를 다루고 있으며, 읽다보면 매번 고개가 끄덕여진다. 작가 요코야마 히데오는 기자출신답게 사회에서 가장 문제가 되고 있는 사건, 사안들을 다뤄온 작가다. 12년간 기자생활을 했고, 그런 경력에 걸맞게 작가로 독립한 후론 추리-범죄물을 주로 발표한다. 그 중 하나인 ‘루팡의 소식’이 산토리 미스터리 대상 가작에 뽑힌다. 후속작 ‘어둠의 계절’도 추리소설의 거장을 기리기 위해 제정된 마쓰모토 세이초 상을 수상하며, 다시 ‘동기’로 일본추리작가협회상을 안는다. 이들 외에도 ‘간수안’ 등 기자로서 현장에서 체험하고 느낀 생생한 경험과 추리력이 작품에 반영됐다. 전체적인 작품 흐름은 복잡한 범죄 속에서도, 인간에 대한 이해와 동정심을 버리지 않는 것. 그런 흐름은 진상에도 잘 나타나 있다. 이 작품에 실린 다섯 개의 소설은 현대인이 직면하고 있는 5대 고민인 주택문제, 상사와 갈등 및 선거, 부모와 자녀의 마찰, 실직, 양심과 외로움을 그리고 있다. ‘타인의 집’은 순간의 실수로 전과자가 된 젊은이의 집 문제를 다뤘다. 어쩌면 전과자가 아니면서도 집 문제로 고생하는 우리네 젊은이를 닮았다. 주인공 가이바라는 강도 미수 사건으로 복역하고 나온다. 그동안 자신을 기다려준 사랑하는 중학 동창과 동거하며, 중학교 담임 선생님 덕분에 월세를 얻는데 성공한다. 그러나 그의 전과를 알게 된 집주인에 의해 쫓겨날 위기에 놓이게 된다. 그 때 하늘이 도우기라도 하 듯 동네에서 알게 된 할아버지가 “양자가 되지 않겠느냐”며 자기 집에 그냥 들어와 살라고 한다. 그 할아버지가 얼마 후 지병으로 돌아가신 뒤 가이바라는 그 집 주인이 된다. 그러나 그 집은 가이바라가 아닌 타인의 집이었고, 그 타인의 집의 비밀이 그를 억누르게 된다. ‘18번홀’은 한적한 산촌에서 선거와 살인사건이 어울려 전개되는 미스터리다. 잘 나가던 공무원 가시무라는 도쿄에서 낙하산으로 내려온 고시출신 상사 때문에 고민에 빠진다. 진로를 고민하던 그에게 고향친구들이 출마를 권유하며, 가시무라는 고민 끝에 출마를 결심한다. 하지만 출마 결심의 이면에는, 가시무라가 젊은 시절 사고로 죽게 한 여인이 있었다. 사고사가 드러나는 걸 막기 위해 출마에 나선 것이었고, 당선되면 행정권을 남용해 사건을 영원히 파묻을 생각이었다. 우리의 선거철과 맞물려 선거의 뒷맛을 알려주는 작품이다. ‘진상’은 이 소설의 메인 작품이다. 중학생이던 아들을 강도에게 잃은 한 회계사무소장의 인생을 그렸다. 아들을 읽은 지 10년 만에 범인이 잡힌다. 그러나 범인 체포는 새로운 갈등의 시작이었다. 오빠를 죽인 범인이 잡혔는데도 찾아오지 않는 딸, 경찰과 신문사의 어두운 모습, 그리고 범인 체포를 계기로 드러나게 되는 자신의 그릇된 인생살이. 주인공은 부인, 그리고 돌아가신 아버지에게서 인생의 참된 의미를 찾게 된다. ‘불면’은 21세기 아버지들의 ‘실업’과 허망한 ‘희생’을 주제로 하고 있다. 주인공 야마무로는 20여년간 충성을 바친 회사에서 쫓겨나게 된다. 살기 위해 택한 것이 인체실험 아르바이트. 수면제 개발에 그의 몸을 바치게 된다. 매일같이 흐리멍덩하게 살던 그에게 술집 여인 살인사건이 다가온다. 그 범인은, 불면증에 시달리며 새벽산보를 하던 야마무로가 목격한 남자였다. 그렇게 생각했었다. 그러나 범인은 그가 목격한 남자의 아들이었고, 그 남자는 아들 대신 위장 자수한 것이었다. 그리고 그 남자는 자신과 같은, 회사에서 쫓겨난 실직자였다. ‘꽃다발 바다’는 어느 여름날 바닷가에서 벌어진 가라테부 합숙훈련이 배경이다. 인간 이하의 취급을 받으며 계속 되던 카라테 훈련 와중에 결국 한 1학년 부원이 물에 빠져 숨지고 만다. 숨진 학생의 1학년 동기들은 그 후 만나지도 않고 엄청난 죄책감을 안고 세상을 살아가게 된다. 그 죄책감이란 동기가 익사했을 때 세상에서 가장 기뻐했기 때문에 생긴 것이었다. 기뻐했던 이유는 지옥 같은 합숙훈련이 동기의 죽음으로 중지됐기 때문이었다. 10 여년 후 30대 성인이 돼 만난 이들은 격론을 벌이며, 동기가 죽었음을 기뻐한 자신들의 원죄를 고백해야 한다는 결론을 내리게 된다.
저자
요코야마 히데오
출판
더이은
출판일
2021.06.25

 

1. 읽기 전에

(1) 저자 소개 - 요코야마 히데오(橫山秀夫)

1957년 도쿄 출생. 도쿄국제대학을 졸업한 후 12년간 신문기자로 일했다. 기자 생활 중 틈틈이 습작한 《루팡의 소식》(1991년)으로 산토리 미스터리 대상 가작을 수상 후 퇴사, 프리랜서 작가로 활동하다가 《그늘의 계절》(1998년)로 마쓰모토 세이초 상을 받으며 본격적인 작가의 길을 걸었다. 휴머니티와 기자 시절의 경험이 반영된 사회성 강한 소설을 발표, 대부분 영상화되며 일본의 대표적인 베스트셀러 작가로 자리매김했다. 2012년 일본 최고의 소설로 평가받은 《64》는 영국추리작가협회상 인터내셔널 대거 최종후보, 독일 미스터리 대상 해외부문 1위에 올랐고, 2016년 영화로도 제작되는 등 안팎으로 인정받으며 요코야마 히데오를 명실상부한 거장의 자리에 올려놓았다.

 

(2) 소설집

소설진상』은 다섯 편의 소설이 묶인 소설집이다. 각 편의 제목은 다음과 같다. 

차례, 출처 알라딘

 

2. 진상

로르샤흐 테스트, 출처 구글

인간의 무의식을 탐구하는 '로르샤흐 테스트(Rorschach test)'중 일부이다. 20세기 스위스의 정신과 의사였던 로르샤흐는 사람들이 모호한 자극마다 다른 반응을 보이는지 의문을 품고 데칼코마니 기법으로 좌우대칭 이미지가 있는 10장의 구체적이지 않은 이미지 카드를 가지고 사람마다 보이는 반응을 연구했다. 무의식과 심리학에 대해서는 잘 모르지만 다른 반응을 보이는 이유는 어렴풋이 알 것 같기도 하다. 사람은 각기 자신이 보고 싶은 것만 보기 때문이 아닐까? 설령 그것이 진짜로 보이는 것과 다를지라도...

 

요코야마 히데오의 다섯 편의 단편을 모은 진상도 자신이 보고 싶은 것만 보는 이들이 등장한다. 소설집이라는 특성상 5편 모두 각기 다른 내용이고 연결되지 않아 틈틈이 읽기는 좋았지만, 대신 그의 소설 중 가장 재미있게 읽었던 64와 같은 몰입감은 다소 떨어지는 것이 사실이다.

 

구체적으로 의도치 않게 전과자가 된 가이바라가 살던 집에서 쫓겨나게 된 상황에서 양자 제안을 하는 동네 할아버지의 이야기를 다룬 ‘타인의 집, 자신의 고향인 산촌의 선거에 출마하게 된 가시무라의 비밀을 다룬 ‘18번 홀, 사건으로 세상을 떠난 아들 요시히코의 범인이 10년 만에 잡히고 나서 그 사건의 내막을 알게 되는 아버지를 그린 ‘진상, 명예퇴직을 한 가장인 야마무로가 수면 실험을 하는 동안 일어나는 동네 살인사건의 진상을 알게 되는 ‘불면, 대학 동아리의 가혹행위와 관련된 ‘꽃다발 바다 이렇게 5편이다.

 

5편 모두 주인공이 사건을 해결하거나 진상을 파헤치는 그러한 이야기는 아니다. 주인공들은 범인이 체포되거나, 자신이 덮어야만 하는 사건의 당사자이거나, 사건이 마무리되면서 수면아래에 사실들이 드러나게 됨에 따라 자연스럽게 알게 되는 현실적인 인물들이다. 현실적이기에 주인공들의 심리를 더 잘 알 수 있는 것도 같았다.

 

진상에 실린 소설들을 읽으면서 들었던 가장 많이 들었던 생각은 위의 로르샤흐 테스트와 빙산이었다.

 

잘 알려진 대로 타이타닉 호는 빙산과 충돌을 하여 침몰했다. 빙산은 물 위에 떠 있는 것보다 물밑의 부분이 더 크다. 인간의 무의식을 설명하는 그림으로도 자주 쓰이곤 한다. 사건의 이면에 숨겨진 진상은 모르는 것보다 더 끔직하고 아플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세 번째 소설인 진상에서 죽은 아들의 기사 쓴 신문사에 주인공이 항의를 하는 대목이다. 아직 사건의 대부분을 알지 못한 상황이긴 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사건을 한쪽으로만 보는 주인공의 모습이 잘 드러나고 있다.

 

“요시히코는 죽어버렸다고. 너희같이 비열한 인간들이 뭐라고 써도 한마디 변명도 못 하고 있다고.”

“비열?”

욱하는 듯했다.

“말씀하신 뜻은 알겠습니다. 한마디로 우리 신문이 요시히코의 명예를 훼손했다는 거지요?”

“그래”

“그게 진짜 요시히코의 명예인가요?”

“뭐?”

“선생의 명예. 혹시 그런 거 아닌가요?”

소름이 돋았다.

뭐라 반박하려 했지만 입이 떨려 말이 나오지 않는다. (177쪽)

 

미스터리 적인 구성은 조금 아쉽지만 인간 심리에 대해 다시금 생각을 해 볼 수 있는 좋은 기회였던 것 같다.

나 역시 보고 싶은 것만 보고 살고 있는 건 아닌지 반성도 되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