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의 무의식을 탐구하는 '로르샤흐 테스트(Rorschach test)'중 일부이다. 20세기 스위스의 정신과 의사였던 로르샤흐는 사람들이 모호한 자극마다 다른 반응을 보이는지 의문을 품고 데칼코마니 기법으로 좌우대칭 이미지가 있는 10장의 구체적이지 않은 이미지 카드를 가지고 사람마다 보이는 반응을 연구했다. 무의식과 심리학에 대해서는 잘 모르지만 다른 반응을 보이는 이유는 어렴풋이 알 것 같기도 하다. 사람은 각기 자신이 보고 싶은 것만 보기 때문이 아닐까? 설령 그것이 진짜로 보이는 것과 다를지라도...
요코야마 히데오의 다섯 편의 단편을 모은 『진상』도 자신이 보고 싶은 것만 보는 이들이 등장한다. 소설집이라는 특성상 5편 모두 각기 다른 내용이고 연결되지 않아 틈틈이 읽기는 좋았지만, 대신 그의 소설 중 가장 재미있게 읽었던 『64』와 같은 몰입감은 다소 떨어지는 것이 사실이다.
구체적으로 의도치 않게 전과자가 된 가이바라가 살던 집에서 쫓겨나게 된 상황에서 양자 제안을 하는 동네 할아버지의 이야기를 다룬 ‘타인의 집’, 자신의 고향인 산촌의 선거에 출마하게 된 가시무라의 비밀을 다룬 ‘18번 홀’, 사건으로 세상을 떠난 아들 요시히코의 범인이 10년 만에 잡히고 나서 그 사건의 내막을 알게 되는 아버지를 그린 ‘진상’, 명예퇴직을 한 가장인 야마무로가 수면 실험을 하는 동안 일어나는 동네 살인사건의 진상을 알게 되는 ‘불면’, 대학 동아리의 가혹행위와 관련된 ‘꽃다발 바다’이렇게 5편이다.
5편 모두 주인공이 사건을 해결하거나 진상을 파헤치는 그러한 이야기는 아니다. 주인공들은 범인이 체포되거나, 자신이 덮어야만 하는 사건의 당사자이거나, 사건이 마무리되면서 수면아래에 사실들이 드러나게 됨에 따라 자연스럽게 알게 되는 현실적인 인물들이다. 현실적이기에 주인공들의 심리를 더 잘 알 수 있는 것도 같았다.
『진상』에 실린 소설들을 읽으면서 들었던 가장 많이 들었던 생각은 위의 로르샤흐 테스트와 빙산이었다.
잘 알려진 대로 타이타닉 호는 빙산과 충돌을 하여 침몰했다. 빙산은 물 위에 떠 있는 것보다 물밑의 부분이 더 크다. 인간의 무의식을 설명하는 그림으로도 자주 쓰이곤 한다. 사건의 이면에 숨겨진 진상은 모르는 것보다 더 끔직하고 아플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세 번째 소설인 ‘진상’에서 죽은 아들의 기사 쓴 신문사에 주인공이 항의를 하는 대목이다. 아직 사건의 대부분을 알지 못한 상황이긴 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사건을 한쪽으로만 보는 주인공의 모습이 잘 드러나고 있다.
“요시히코는 죽어버렸다고. 너희같이 비열한 인간들이 뭐라고 써도 한마디 변명도 못 하고 있다고.”
“비열?”
욱하는 듯했다.
“말씀하신 뜻은 알겠습니다. 한마디로 우리 신문이 요시히코의 명예를 훼손했다는 거지요?”
“그래”
“그게 진짜 요시히코의 명예인가요?”
“뭐?”
“선생의 명예. 혹시 그런 거 아닌가요?”
소름이 돋았다.
뭐라 반박하려 했지만 입이 떨려 말이 나오지 않는다. (177쪽)
미스터리 적인 구성은 조금 아쉽지만 인간 심리에 대해 다시금 생각을 해 볼 수 있는 좋은 기회였던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