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 읽기 전에
(1) 등장인물
전작에 이어 이번에도 캐릭터 설명이 첨부되어 있다.


(2) 이번에는 뱀파이어
요 네스뵈의 해리 홀레 시리즈를 읽을 때마다 늘 느끼는 점이 있다. 이 작가는 범죄를 단순한 사건으로 다루지 않고, 인간 내면에 숨어 있는 가장 어두운 욕망을 집요하게 끌어올린다는 것이다. 열한 번째 시리즈인 『목마름』 역시 그런 작가의 장점이 극대화된 작품이었다.
제목만 보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은 물에 대한 갈증이 아니라, 표지의 날카로운 송곳니 이미지가 암시하듯 ‘뱀파이어’다. 처음에는 단순히 분위기를 위한 장치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작품은 예상보다 훨씬 더 직접적으로 피에 대한 갈증, 그리고 그것을 넘어선 인간의 다양한 욕망을 이야기한다. 결국 이 소설에서 가장 무서운 것은 살인 그 자체가 아니라, 무언가를 끝없이 갈망하는 인간의 본능이었다.
2. 목마름
(1) 오슬로를 뒤덮은 뱀파이어 살인과 해리 홀레의 귀환
이야기는 오슬로에서 벌어진 기괴한 연쇄 살인으로 시작된다. 피해자들은 목에 깊은 상처를 입은 채 발견되고, 시신에는 피가 거의 남아 있지 않다. 언론이 곧바로 이 사건을 ‘뱀파이어 살인’이라 부르기 시작하는 이유도 충분히 납득된다.
요 네스뵈는 사건의 첫인상부터 강렬하게 독자를 끌어당긴다. 단순히 잔혹한 살인이라는 수준을 넘어, 도시 전체를 공포로 몰아넣는 상징성을 만들어낸다. 피가 사라진 시신이라는 설정은 너무 비현실적일 것 같으면서도 이상하게 현실적인 공포를 자극한다.
사건이 커질수록 경찰 조직은 혼란에 빠지고, 정치적 계산까지 개입되면서 수사는 점점 복잡해진다. 특히 미카엘 벨만의 존재는 이 작품에서 범인 못지않게 인상적이다. 그는 사건 해결보다 자신의 정치적 입지를 우선하는 인물처럼 보이며, 이로 인해 소설은 단순한 추리소설이 아니라 권력의 욕망을 다룬 정치 스릴러적 결까지 갖게 된다.
그리고 결국, 마지막 카드로 해리 홀레가 다시 호출된다.
이제는 경찰학교 교수로 비교적 안정된 삶을 살고 있던 해리지만, 독자는 이미 알고 있다. 그는 결코 범죄의 세계에서 완전히 벗어날 수 없는 인물이라는 것을. 평온한 일상을 지키고 싶어 하면서도 결국 다시 어둠으로 걸어 들어가는 그의 모습은 이번 작품에서도 강렬하다.
(2) ‘목마름’이라는 제목 안에 숨은 여러 갈증
이번 소설에서 가장 인상적이었던 부분은 제목의 다층적인 의미였다.
가장 직접적인 의미는 살인자의 피에 대한 갈증이다. 범인은 단순히 살인을 저지르는 것이 아니라, 피를 탐닉하는 존재처럼 묘사된다. 그래서 범죄는 살해 행위 이상의 의미를 띤다. 그것은 결핍이고, 중독이며, 비틀린 욕망의 발현이다.
하지만 작품 속에서 목마른 존재는 범인만이 아니다.
범인은 피에 목마르다
벨만은 권력에 목마르다
언론은 공포와 관심에 목마르다
해리는 정의에 목마르다
이 지점에서 제목은 단순한 사건의 장치가 아니라 작품 전체를 관통하는 핵심 주제가 된다. 모든 인물들이 저마다 다른 갈증을 품고 움직이고, 그 갈망이 결국 위험한 선택으로 이어진다. 그래서 『목마름』은 선과 악이 선명하게 나뉘는 전통적인 추리소설이라기보다, 욕망에 잠식된 인간들이 만들어내는 비극의 기록처럼 읽힌다.
(3) 알프레드 쿠빈의 ‘뱀파이어’가 떠오르는 음산한 분위기
소설 후반부에서 잠깐 언급되는 알프레드 쿠빈의 ‘뱀파이어’ 이미지는 작품의 분위기를 이해하는 데 꽤 중요한 장치처럼 느껴졌다.


쿠빈 특유의 음산하고 불안한 선들은 꿈과 악몽, 죽음과 욕망의 경계를 흐린다. 『목마름』 속 오슬로 역시 마찬가지다. 차갑고 음습한 도시의 분위기, 사람들의 불안, 그리고 보이지 않는 공포는 마치 쿠빈의 판화 속 세계를 그대로 소설로 옮겨놓은 듯한 인상을 준다.
이 작품이 단순히 사건만 흥미로운 것이 아니라 배경의 정서까지 서늘하게 살아 있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고 느꼈다.
(4) 끝까지 속게 만드는 요 네스뵈식 레드 헤링
요 네스뵈는 역시 독자를 속이는 데 능숙하다.
전작 『폴리스』에서도 느꼈지만, 그는 레드 헤링을 정말 영리하게 활용한다. 이번에도 초반부터 독자와 경찰 모두 자연스럽게 발렌틴 예르트센을 범인으로 의심하게 된다. 탈옥한 성범죄자, 얼굴을 바꾼 채 활보하는 인물이라는 설정은 너무나도 그럴듯하다.
그래서 이번만큼은 속지 않겠다고 다짐하며 읽어도, 결국 또다시 작가의 의도대로 끌려간다.
특히 중반 이후 “아, 이제 진실에 가까워졌다”는 순간마다 다시 판이 뒤집히는 전개는 정말 압도적이다. 빠른 속도감 속에서 단서와 반전이 쉼 없이 이어지기 때문에 페이지가 멈추지 않는다.
다만 이번 작품은 시리즈 중에서도 살해 묘사가 특히 강렬한 편이다. 잔혹한 장면이 꽤 선명하게 그려지기 때문에 이런 표현에 민감하다면 다소 불편할 수도 있다. 하지만 그 잔혹함조차 범인의 비틀린 욕망을 보여주는 장치로 기능한다는 점에서 작품의 완성도를 높인다.
(5) 해리 홀레라는 인물의 양가성
해리 홀레가 여전히 매력적인 이유는 그가 결코 완벽한 영웅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는 늘 자기 파괴적인 충동을 안고 있고, 어둠에 쉽게 끌리는 인물이다. 동시에 누구보다 정의에 집착한다. 이 상반된 속성이 한 인물 안에 공존하기 때문에 해리는 언제나 예측 불가능하면서도 설득력 있다.
이번 『목마름』에서 특히 좋았던 부분은, 그런 해리가 이제는 평범한 행복을 지키고 싶어 한다는 점이었다. 라켈과의 삶, 결혼 이후의 안정된 일상은 그에게 너무나 소중한 것이 되었다.
그럼에도 사건이 시작되면 그는 다시 중심으로 들어간다. 그 모습은 마치 정의에 대한 갈증이 그의 본능이라는 사실을 다시 증명하는 것처럼 보였다. 동시에 라켈이 입원하자 모든 일을 멈추고 곁을 지키는 모습에서는, 이전보다 훨씬 인간적이고 성숙해진 해리의 얼굴도 읽힌다.
결국 인간은 무엇에 목마른가
책을 덮고 나면 제목이 다시 떠오른다.
이 작품에서 진짜 갈증은 피였을까.
아니면 인정, 권력, 사랑, 정의 같은 더 본질적인 욕망이었을까.
내게 『목마름』은 인간이 결국 끝없이 무언가를 갈망하는 존재라는 사실을 가장 서늘하게 보여준 작품이었다. 그 갈망은 사람을 앞으로 나아가게도 하지만, 동시에 파괴의 방향으로 이끌기도 한다. 그래서 이 작품은 단순한 연쇄살인 미스터리를 넘어, 욕망이라는 이름의 갈증을 해부한 심리 스릴러로 오래 남았다. 사건보다 더 흥미로운 것은 인간이고, 요 네스뵈는 그 인간의 어두운 내면을 누구보다 집요하게 파고드는 작가다. 『목마름』은 그 강점이 가장 선명하게 드러난 작품 중 하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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