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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일본소설

유지니아 - 자기만의 방식으로 기억된 17년 전 독극물 사건의 추적기

유지니아

 
유지니아
아닌 소설이 있다면 어떨까? 그런데도 일본추리작가협회상을 받고 세계적으로 널리 읽히며 출간 10년이 더 지나도 많은 독자에게 회자된다면, 그 소설이야말로 미스터리의 지평을 넓힌 기념비적 작품이 아닐까? 온다 리쿠 장편소설 《유지니아》는 일가족 독살 사건을 중심으로 관련자들을 인터뷰하는 형식을 갖췄다. 화자가 교차되며 진상이 드러나는 듯하지만, 기억에 근거해 서로 엇갈리는 증언들을 읽으며 독자는 완전히 새로운 추리를 경험하게 된다. 사건의 진상을 끝없이 안갯속
저자
온다 리쿠
출판
비채
출판일
2021.12.10

1. 읽기 전에

(1) 저자 소개 - 온다 리쿠 (恩田陸)

와세다대학교 교육학부를 졸업하고 직장 생활을 하면서 틈틈이 소설을 집필, 1992년 일본판타지노벨대상 최종 후보에 오른 여섯 번째 사요코로 문단에 데뷔했다. 2005밤의 피크닉으로 요시카와에이지 문학신인상과 서점대상 1위를 수상했고, 2006유지니아로 일본추리작가협회상, 2007호텔 정원에서 생긴 일로 야마모토슈고로상을 수상하며 작품성과 대중성을 두루 갖춘 일본의 대표 작가로 확고하게 자리매김했다. 2016년에는 꿀벌과 천둥으로 나오키상 서점대상 1위를 사상 최초로 동시에 수상하는 대기록을 세우고, 일본 문학사상 최초로 서점대상 1위에 두 번 오른 작가가 되었다.

(2) 차례

차례

2. 유지니아

군맹무상(群盲撫象)이라는 말이 있다. ‘맹인(盲人) 여럿이 코끼리를 만진다.’는 뜻으로, 각자가 사물이나 현상의 일부만 보고 그것이 전체인양 잘못 판단하는 것을 이르는 말이다. 하지만 우리의 기억은 왜곡과 편향되기가 생각보다 쉽다는 연구결과가 종종 발표되고 있다. 게다가 기억을 해야 하는 사건이 떠올리기 힘든 일이라면 그 정도는 심해지기 마련이다. 어느 한 사건에 대하여 시간이 지난 후 관련자들의 기억을 더듬어 찾아가도 그 사건은 구멍이 숭숭 뚫리기 마련이다. 온다 리쿠의 소설 유지니아가 그렇다.

 

호쿠리쿠 지방의 지역 명망 높은 아오사와 집안의 잔칫날 저택에서 독살 사건이 벌어진다. 마을 잔치였기에 가족들은 물론이고 동네 사람도 여럿 놀러 온 때 정체불명의 사내가 배달한 독극물을 탄 음료수를 마시고 열일곱 명이 사망한 사건이다. 그곳 현장에는 앞을 못 보는 중학생 소녀인 아오사와 히사코만 남았다. 얼마 뒤 마을에 혼자 살던 청년이 자백 메모를 남긴 뒤 자살을 하여 공식적으로 사건은 종결된다. 하지만 여전히 의혹이 남아있다.

 

그로부터 20년 지난 시점에서 라는 화자가 독살사건에 대하여 관련자들에게 인터뷰를 하면서 사건에 대하여 조금씩 파고드는 형식으로 이야기는 진행된다. 20년이 흐르는 사이 아오사와 히사코의 친구인 사이가 마키코가 이 사건에 대하여 <잊혀진 축제>라는 제목의 책을 발간하여 세간에 관심을 받은 적이 있었다. 문제는 이야기를 전개하는 라는 인물이다. 소설 속에서는 라는 인물이 정확하게 누구인지 밝혀지지 않는다. 나는 직접 사건에 개입하지 않고 다양한 증언을 통해 사건의 진실에 다가가려고 한다.

 

예를들면 3장에서는 사건의 생존자 히사코의 친구 마키코(나중에 잊혀진 축제라는 책을 쓴 인물)가 사건 당시의 상황에 대해 이야기를 들려주는가 한편, 5장과 11장에서는 사건을 담당했던 형사가 사건에 관한 수사이야기를 들려주는 식이다. 문제는 이야기를 들려주는 사건 관계자인 화자가 자신만의 기억과 관점을 가지고 있어, 동일한 사건을 다르게 해석하고 묘사한다는 점에 있다. 앞서 이야기를 한 군맹무상과 같은 상황이다. 각기 다른 진술을 통해 사건을 입체적으로 쌓아가는 것은 독자의 몫인 셈이다.

 

또 하나 유지니아를 어렵게 만드는 인물은 사건에 직접적으로 등장하지는 않지만 화자들이 공통적으로 중요인물로 언급하는 유지니아라는 여인이다. 그녀는 앞서 언급한 대로 직접적으로 이야기에 등장하지 않는다. 주변 사람들에게 다양한 모습으로 각인되어 있지만 정작 그들이 범인으로 지목하지 않고 사건에 대해 증언도 하지 않는 묘한 인물이다. 사건을 파헤치려는 의 인터뷰는 어쩌면 유지니아라는 신비의 여인을 찾아가는 과정이 아닐까란 생각도 들었다.

 

소설의 후반부로 갈수록 생각지도 못한 반전이 등장하기도 하지만 끝까지 사건의 진상에 대해서는 밝혀지지 않는다. 사건이 일어나고 그에 대한 명쾌한 해결이 미스터리의 묘미라고 생각하고 있는 나에게 소위 이런 열린 결말은 답답해서 피하는 편이지만 이상하게도 『유지니아』에서는 사건이 명쾌하게 해결되었다면 더 어울리지 않는 것 같았다. 분명 독극물로 인하여 17명이 사망하는 사건이 일어난 것은 사실이다. 그런데 시간이 지났다고는 하지만 그 사건을 각기 자신만의 방식으로 기억을 하고 있는 사람들을 통해 진실에 대한 사람의 기억에 대하여 다시 한번 생각해 볼 수 있었다.

 

3. 옮긴이의 말 중에서

원래 독자에게 사적 감상 혹은 작품을 ‘읽는 법’을 강요하는 일은 되도록 피하려 하지만, 이번만은 은근히 부탁을 드려볼까 한다.

선입견 없이 이 책을 읽으면 좋겠다. 이 이야기는 어떤 이야기일 것이다. 어떤 방향으로 전개될 것이다, 이런 확고한 개념 없이 읽으면 좋겠다. 혹은 바꿔 말해서, 그런 개념을 갖고 읽되 그 개념에 들어맞지 않는 부분이 나오더라도 당혹감을 즐겨주면 좋겠다. (421쪽)

 

옮긴이의 말처럼 유지니아를 읽으시는 분은 종종 찾아오는 그 당혹감을 즐길 수 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