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소설/한국소설

펑 - 어느날 가정집에 배달된 사제폭탄

 

영화 같은 이야기로 시작해서 우리들의 이야기로 끝난다. - 차주동 프로듀서 ‘가족의 사랑이 모든 해결책’이라는 서사가 골동품 취급을 받는 시대에 새로운 방향에서 가족 이야기를 펼친다. - 진산 소설가
저자
이서현
출판
마카롱
출판일
2021.08.05

 
2014년에 개봉한 독립영화 ‘들개’에서 주인공 정구는 세상에 대한 반발로 사제폭탄을 만들기는 하지만 정작 폭발을 하지는 못하고 생산자라는 이름으로 택배 붙인다. 역시 세상에 대한 불만이 가득한 효민이 그 폭탄을 받으면서 사건이 전개되는데, 정구 역을 맡은 변요환 배우나 효민 역을 맡은 박정민 배우의 연기도 훌륭했지만 가장 흥미로웠던 것은 우리나라 영화에서 ‘사제폭탄’이라는 소재를 사용했다는 것이다. 그래서 이서현 작가의 『펑』에 대하여 ‘평범한 가정에 어느 날 사제폭탄이 배달되고, 무료한 현대인들에게는 즐거운 구경거리가 시작된다.’는 책 소개를 보았을 때 가장 먼저 든 생각은 영화 ‘들개’였었다. 아무래도 ‘무료한 현대인’, ‘즐거운 구경거리’ 보다는 ‘사제폭탄’이라는 문구가 가장 눈에 띄니까...
 
대학교수인 아버지, 약사인 어머니, 드라마 작가 지망생인 쌍둥이 장녀, 대기업을 퇴사하고 스타트업을 시작한 쌍둥이 차녀, 아직 고등학생인 막내로 이루어진 남부럽지 않은 중산층인 주인공 집에 주소만 기입된 택배가 배달되고 그것이 터지면서 사건이 시작된다. 몇 해 전 튀니지의 재스민 혁명에서는 트위터가 있었듯이 이 사건에서는 1인 미디어라는 유튜브를 중심으로 일파만파 퍼져 나간다. 그와 동시에 가족들만의 비밀도 여과 없이 전파를 타고 나아간다. 책 소개의 후반부의 ‘무료한 현대인의 즐거운 구경거리’가 등장하는 것이다. 사건의 도화선을 사제폭탄을 맡고 있다면 무료한 현대인의 즐거운 구경거리는 사건의 시작부터 끝까지 담당하고 있다.

사건이 터지고 나서 진행된 아파트를 청소하는 분과의 인터뷰에 이런 대목이 있다.

청소라는 게 그래요. 열심히 해도 티는 안 나는데, 안 하면 바로 티가 나요. 깨끗한 건 몰라봐도 더러운 건 알아보는 게 사람이거든요. (115쪽)

또한 폭탄이 터지는 날 우연히 옥상에 올라간 것을 목격했다는 한 유튜버의 인터뷰로 인해 사건의 배후로 의심받고 있는 막내 두승아의 친구는 이러한 인터뷰를 한다.

 

맨날 붙어 있는 내가 아무리 아니라고 해봤자 승아에 대해 쥐뿔도 모르는 애가 수상하다고 말하는 걸 믿는다는 거예요. 그렇게 승아 친구로 둔갑한 애들이 몇 명이나 되는지 세지도 못할걸요. 그냥 사람들은 의심하고 싶으니까 의심하는 게예요. 진짜 의심스러워서 의심하는 게 아니라. (171쪽)

 

남부럽지 않은 아파트와 사회적으로 인정받는 부모님과 자신의 커리어를 쌓아가고 있는 쌍둥이 자녀, 아무런 문제 없이 자라고 있는 막내까지 겉보기에는 흠잡을 곳이 없는 가정이지만 위 인터뷰와 같이 깨끗한 건 몰라도 더러운 건 알아보고 의심하고 싶어 의심하는 사람들로 인하여 가족들만의 치부도 낱낱이 드러나게 된다. 심지어 가족들에게도 비밀로 하고 있는 비밀조차도 말이다.

폭탄테러의 수사와는 별개로 그동안 품고 지내왔던 가족들 사이의 폭탄도 하나 둘씩 터진다. 잡 현관에서 터져 거실을 날려버린 폭탄은 인테리어 업자들에 의해 수리되어 흔적을 없앴지만 가족들이 품고 있던 폭탄은 쉽게 치료가 되지 않는데, 그래도 가족은 가족이라 서로의 대화를 통해 아픔을 이해하고 보듬어 주며 치료해 나간다. ‘영화 같은 이야기로 시작해서 우리들의 이야기로 끝난다.’는 책 소개가 비로소 이해가 되었다.

톨스토이는 『안나 카레니나』를 이렇게 시작한다. “행복한 가정은 모두 고만고만하지만, 불행한 가정은 저마다 나름나름으로 불행하다” 가해자가 밝혀지지 않은 상황에 폭탄 테러의 피해자만 드러나 있고 남 부럽지 않게만 보이는 가정이 나름의 아픔이 있는 것을 여러 사람들이 지켜보는 것은 조금 불편했지만, 이 또한 인간의 본성 중의 하나가 아닌 가한 생각이 들었다. 톨스토이도 밝혔듯 ‘고만고만’ 한 것을 보는 것보다 ‘나름 나름’ 다른 것을 보는 것이 더 흥미로우니까.

폭탄테러의 범인은 경찰이 잡지만, 그와 별개로 가족들 사이의 폭탄을 해결한 것은 ‘대화’였다. 자존심 때문에 혹은 자신의 생각으로 의례 짐작하여 쌓인 오해를, 가족이라서 이해할 거라고 넘겼던 것들이 가족이기 때문에 쌓여왔던 오해들이 속마음을 툭 터놓은 진솔한 대화로 하나둘 해결해 나간다. 물론 해결과 용서는 다르긴 하지만 그래도 상처를 보듬고 서로를 용서하는 출발선에 선 것이다. 책 말미의 아빠 두진혁과 장녀 두아라의 대화이다.

 

적어도 도망치지 않았으니까… 남 탓 안하고 선택을 감수하는 게 쉬운 일은 아니니까. 버티는 것만으로도 대단한 게 있는 거야…. 아빠가 그걸 까먹고 있었네. 그래서 실수도 한 거고.”

“실수라도 퉁치는 거 비겁한 거야. 그리고 나 남 탓했어. 세상 탓도 하고, 버티려고 버틴 것도 아니고, 버틸 수밖에 없어서 버틴 거야. 그러니까 아빠도 버텨.” (313쪽 인용)

 

아라의 말이 맞는 것 같다. 남 탓을 해도, 세상 탓을 해도 버틸 수밖에 없는 세상이다. 이것 때문인지 사건이 해결되고 가족도 서로 이해하기 시작했지만 왠지 씁쓸한 기분을 떨쳐낼 수 없는 소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