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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한국소설

일곱 해의 마지막 - ‘그는 자음과 모음으로 이뤄진 언어의 세계를 떠날 수 없었다'

 
일곱 해의 마지막
개인이 밟아나간 작품 활동의 궤적을 곧 한국소설의 중요한 흐름 가운데 하나로 만들어내며 한국문학의 판도를 뒤바꾼 작가 김연수의 신작 장편소설『일곱 해의 마지막』. 이번 작품은 청춘, 사랑, 역사, 개인이라는 그간의 김연수 소설의 핵심 키워드를 모두 아우르는 작품으로, 한국전쟁 이후 급격히 변한 세상 앞에 선 시인 ‘기행’의 삶을 그려낸다. 1930~40년대에 시인으로 이름을 알리다가 전쟁 후 북에서 당의 이념에 맞는 시를 쓰라는 요구를 받으며 러시아문학을 우리말로 옮기는 일을 하는 모습에서 기행이 우리에게 널리 알려진 시인 ‘백석’을 모델로 했음을 짐작할 수 있다. 1958년 여름, 번역실에 출근한 기행은 한 통의 편지봉투를 받게 된다. 누군가가 먼저 본 듯 뜯겨 있는 그 봉투 안에는 다른 내용 없이 러시아어로 쓰인 시 두 편만이 담겨 있다. 시를 보낸 사람은 러시아 시인 ‘벨라’. 작년 여름 그녀가 조선작가동맹의 초청을 받아 북한에 방문했을 때 기행은 그녀의 시를 번역한 인연으로 통역을 맡았었다. 그리고 그녀가 러시아로 돌아가기 전 기행은 그녀에게 자신이 쓴 시들이 적힌 노트 한 권을 건넸었다. 그런 만남이 있은 후 기행은 북한에서는 발표할 수 없는 시를 적어 러시아에 있는 벨라에게 보냈던 것인데, 그동안 어떤 회신도 없다가 일 년이 지나 답신이 온 것이었다. 봉투에 러시아 시 두 편만이 담긴 채로. 그 봉투를 먼저 뜯어본 건 누구였을까? 벨라라면 편지도 같이 보냈을 텐데 그건 누가 가져간 걸까? 벨라는 자신이 보낸 노트를 어떻게 했을까? 당의 문예 정책 아래에서 숨죽인 채 무기력하게 살아가던 기행의 삶은 벨라에게서 온 그 회신으로 인해 예상치 못한 방향으로 흘러가기 시작한다.
저자
김연수
출판
문학동네
출판일
2020.07.01

 

1. 일곱 해의 마지막을 읽기 전에

(1) 저자 소개 김연수

소설가. 1994년 작가세계문학상을 통해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소설집 스무 살』 『내가 아직 아이였을 때』 『나는 유령작가입니다』 『세계의 끝 여자친구』 『사월의 미, 칠월의 솔』 『이토록 평범한 미래』 『너무나 많은 여름이, 장편소설 『7번국도 Revisited』 『사랑이라니, 선영아』 『꾿빠이, 이상』 『네가 누구든 얼마나 외롭든』 『밤은 노래한다』 『원더보이』 『파도가 바다의 일이라면』 『일곱 해의 마지막, 산문집 청춘의 문장들』 『소설가의 일』 『시절일기등이 있다.

 

(2) 통영2

구마산(舊馬山)의 선창에선 좋아하는 사람이 울며 나리는 배에 올라서 물길이 반날

갓 나는 고당은 갓갓기도 하다

바람맛도 짭짤한 물맛도 짭짤한

전복에 해삼에 도미 가재미의 생선이 좋고

파래에 아개미에 호루기의 젓갈이 좋고

새벽녘의 거리엔 콩콩 북이 울고

밤새껏 바다에선 뿡뿡 배가 울고

자다가도 일어나 바다로 가고 싶은 곳이다

집집이 아이만한 피도 안 간 대구를 말리는 곳

처녀들은 모두 어장주(漁場主)한테 시집을 가고 싶어 한다는 곳

산 너머로 가는 길 돌각담에 갸웃하는 처녀는 금()이라는 이같고

내가 들은 마산 객주집의 어린 딸은 난()이라는 이 같고

()이라는 이는 명정(明井)골에 산다는데

명정골은 산을 넘어 동백나무 푸르른 감로(甘露)같은 물이 솟는 명정(明井)샘이 있는 마을인데

샘터엔 오구작작 물을 긷는 처녀며 새악시들 가운데 내가 좋아하는 그이가 있을 것만 같고

내가 좋아하는 그이는 푸른 가지 붉게붉게 동백꽃 피는 철엔 타관 시집을 갈 것만 같은데

긴 토시 끼고 큰머리 얹고 오불고불 넘엣거리로 가는 여인은

평안도서 오신 듯한데 동백꽃 피는 철이 그 언제요.

옛 장수 모신 낡은 사당의 돌층계에 주저앉아서

나는 이 저녁 울 듯 울 듯 한산도(閑山島) 바다에 뱃사공이 되어가며

녕 낮은 집 담 낮은 집 마당만 높은 집에서 열나흘 달을 업고 손방아만 찧는 내 사람을 생각한다.

 

2. 일곱 해의 마지막

 

위의 시는 시인 백석이 경상남도 통영 충렬사 계단에서 을 생각하여 썼다는 ‘통영2’의 전문이다. 시를 가까이하지 않는 내가 봐도 애틋하고 안타까운 마음이 절로 나는 시인 것 같다. 우리에게는 월북시인으로 알려진 백석의 1957년부터 1963년까지의 삶을 다룬 김연수 작가의 일곱 해의 마지막을 읽으며 찾아보고 싶었던 시이기도 하다. 소설에는 시는 등장하지 않지만 통영으로 가는 기차 안에서 벗 현과의 대화는 나온다.

 

“그래도 꿈이 있어 우리의 혹독한 인생은 간신히 버틸 만하지. 이따금 자작나무 사이를 거닐며 내 소박한 꿈들을 생각해. 입김을 불면 하늘로 날아갈 것처럼 작고 가볍고 하얀 꿈들이지.”

“예를 들면 어떤 꿈들인가?”

현이 물었다.

“우선은 시집을 한 권 내고 싶었지. 제목은 사슴이면 좋겠고.” (223쪽)

 

시집 사슴을 들고 내려가는 소설의 말미의 대목이니 백석의 북한생활의 다룬 소설 주 내용과는 조금 다르지만 꿈이 있어 혹독한 인생을 간신히 버틸 만 하다다는 말이 유독 다가왔다. 결론부터 말하지만 백석은 일곱 해 동안 러시아 문학을 번역을 하고 그것도 모자라 당으로부터 축출되어 오지에서 양을 치면서 살아간다, 그리고 그 후 30년간 시를 발표하지 않고 1996년 세상을 떠난다. 이런 시를 쓴 시인이 반평생을 시를 발표하지 않았다는 것은 납득이 가지 않는다. 아마 시를 쓸 수 없는 환경이었다는 말이 맞을 것이다. 러시아 시인인 벨라 아흐마둘리나의 통역으로 그녀와 대화를 나누다 백석(소설에서는 본명인 기행을 쓴다)은 생각한다.

 

전쟁은 세상을 지옥으로 만들었다. 그보다 거 끔찍한 일은 없을 것이라고 기행은 생각했다. 차라리 죽어버린다면, 어떨까? 그러나 마흔이 지나자 죽는 일도 쉽지 않았다. 모든 것이 불타버렸으므로 그는 가족을 이끌고 고행인 정주로 피난을 갔다. 고향 인근에서 숨어 지내며 그는 평에 대한 시를 번역했다. 불붙은 산하 앞에서 그가 할 수 있는 일은 고작 그것뿐이었다. 그리고 전쟁이 끝나자 지옥보다 더 나쁜 게 있다는 것을 알게 됐다. 그것은 지옥 이후에도 계속되는 삶이었다. 그런 삶에도 탈출구가 있는 것일까? (116-117쪽)

 

전쟁도 겪지 않았고 그 뒤의 지옥도 경험해보지 않았기에 백석이 느낀 감정을 온전히 공감할 수는 없지만 그럼에도 그의 심정을 조금이나마 느낄 수 있었다. 그럼에도 그는 생의 마지막까지 하고픈 말과 글을 남기지 않았으니 그 또한 어떤 심정이었을까란 생각도 들었다. 더불어 김연수 작가는 이 모든 것을 담담하게 서술하고 있다. 마치 무릎에 손주를 뉘어놓고 부채를 부치면서 이야기를 해주시는 할머니 같다는 생각이 들 만큼... 그래서 더 서글프게 느껴진 것 같았다.

책 표지에도 인용된 문장이 백석의 삶을 대변해 주는 것 같다.

 

‘그는 자음과 모음으로 이뤄진 언어의 세계를 떠날 수 없었다. 평생 혼자서 사랑하고 몰두했던 자신만의 그 세계를’

 

평생 혼자 사랑하고 몰두한 언어의 세계를 결코 떠날 수 없었던 시인을 살펴보는 것도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3. 더 알아보기

(1) 백석 시인

백석(白石, 191271~ 199617)은 일제강점기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시인이자 소설가, 번역문학가이다. 본명(本名)은 백기행(白夔行)이고 아명은 백기연(白夔衍, 1915년에 백기행(白夔行)으로 개명)이며 1945년 일본국 패망 및 조선국 광복 후 사실상 백석(白石)으로 개명(改名)한 그의 본관은 수원(水原)이다. ()이라는 이름은 일본 시문학가 이시카와 다쿠보쿠(石川啄木)의 시작품을 매우 좋아하여 그 이름의 석을 썼다고 알려져 있다. (출처 위키백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