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저자
- 켄 리우
- 출판
- 황금가지
- 출판일
- 2024.06.12

1. 읽기 전에
(1) 저자 소개 - 켄 리우 (Ken Liu)
1976년 중국 서북부 간쑤성의 란저우시에서 태어나 열한 살 때 가족과 함께 미국으로 이민했다. 대학 시절부터 습작을 시작하여 수많은 단편을 썼으나 오랫동안 출판 기회를 얻지 못하다가 2002년 오슨 스콧 카드가 편집한 『포보스 SF 단편선』에 「카르타고의 장미」를 발표하며 소설가로 첫발을 내디뎠다. 이후 2011년에 발표한 단편 「종이 동물원」으로 2012년에 SF 및 판타지 문학계에서 최고의 권위를 자랑하는 휴고 상과 네뷸러상, 세계환상문학상을 모두 휩쓴 최초의 작가가 됐다.
(2) 작가의 말 중에서
작가로서 나는 말을 재료로 삼아 작품을 만들지만, 그 말들은 독자의 의식이 생기를 불어넣어야 비로소 의미를 띤다. 이야기는 작가와 독자가 함께 들려주는 것이기에, 모든 이야기는 독자가 찾아와 해석할 때 마침내 완전해진다. (9쪽)
독자의 해석에 따라 다양하게 완전해질 수 있는 이야기를 쓰는 작가의 글을 어떻게 안 볼 수 있을까. 나의 의식이 어떤 의미를 띠고 작가의 이야기가 완성될지 궁금해졌다.
2. 은랑전
사이언스 픽션(science fiction) 흔히 SF라고 부르는 공상과학소설은 최근에야 몇몇 소설을 읽고 있지만 그리 좋아하지는 않는 분야였다. 왜 그런지 생각을 해보니 과학기술의 미래를 그리는 SF소설의 배경의 대부분은 멸망한 세계, 디스토피아를 그리고 있어 무거운 분위기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고 보니 피가 낭자한 살인 사건을 다루는 추리소설을 그렇게 좋아하면서 무거운 분위기를 싫어하다니 자기모순이긴 하지만 그냥 취향이 그렇다. SF소설의 고전이라 일컫는 아이작 아시모프의 『파운데이션』도 한두 권 읽다 말았다.
그러던 중 도서관에서 아주 색다른 SF소설을 만났다. 표지가 인상적이어서 고른 책인 켈 리우 작가의 『은랑전』이다. 아무래도 다양한 책을 읽으려 독서 편식을 그만두어야겠다고 다짐한 덕분에 눈에 띈 책이지만 작가의 서문을 보고 이 책을 읽으려고 마음먹었다.
『은랑전』은 SF 단편 소설 13편이 실려 있다. 첫 번째 소설인 ‘일곱 번의 생일’부터 새로웠다. 소설은 헤어진 부모와 함께 일곱 번째 생일을 맞은 미아라는 소녀의 이야기이다. 일곱 번째 생일 다음 49세의 모습, 그리고 343세, 2,401세, 16,807세, 117,649세, 823,543세까지 7배씩 늘어나는 미아의 모습을 차례대로 보여준다. 인간으로서의 수명을 무시한 나이의 모습을 작가는 이럴 수도 있게 다는 생각이 들도록 그럼직하게 그려내고 있다.
그리고 표제작인 ‘은랑전’은 특이하게도 당나라를 배경으로 한다. 당나라의 장수의 딸을 비구니가 데려다 ‘은랑(隱娘)’이라는 이름의 자객으로 훈련시키고 절도사를 암살하는 과정을 그리고 있다. 그 싸움을 공간과 공간의 중첩으로 그리고 있는데 배경만 당나라이지 SF소설이라 해도 충분해 보였다.
그밖에 해수면이 높아져 주요 도시가 물에 잠긴 시대를 그린 ‘요람발(發) 특별 기고 「은둔자.매사추세츠해(海)에서 보낸 48시간」’이나 ‘이건 고통의 상품화다! 사진을 특정한 구도에 맞춰 자르고 편집해 거짓말에 이용하듯이, 가상현실 또한 같은 방식으로 조작할 수 있다.’라는 문장으로 대변되는 가상현실의 모습을 ‘비잔티움 엠퍼시움’도 재미있었지만 가장 인상적으로 본 소설을 ‘추모와 기도’이다. 지금 사회적으로 문제가 되고 있는 딥페이크 기술이 등장해서 그런 것일 수도 있다.
‘추모와 기도’는 총기 사고로 딸을 잃은 한 가족의 이야기이다. 딸을 잃은 부모는 인터넷 공간에 딸을 추모하고 그리워하고 있는 데 그 추모를 왜곡하고 변질시키는 이들에 의해 한 가정이 파멸되는 과정을 그린다. 딸을 잃은 엄마인 세라포트의 말이다.
음모론이 딥페이크 영상 기술과 합쳐지더니 인터넷 밈으로 대체되어 연민이라는 감정을 다 헤집어 놓고는, 고통을 한낱 웃음거리로 요약해 버리더군요. (269쪽)
사고로 잃은 딸의 추모영상이 딥페이크 기술로 인해 음란물과 잔인한 영상으로 변하여 한낱 웃음거리, 볼거리가 된 것을 본 부모의 심정이라고 하기 에는 위 한 문장으로 표현하기에 부족해 보인다. 또한 아버지 그레그 포트의 말도 인상적이다.
저는 가끔 우리가 자유라는 개념을 오해하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무엇을 ‘할 자유’를 무엇을 ‘피할 자유’보다 훨씬 더 소중하게 여기니까요. ……인터넷에서 마음 내키는 대로 글을 적고 말을 할 자유도 반드시 누려야 하니까, 유일한 해결책은 표적이 된 사람들에게 방어형 소프트웨어인 갑옷을 입으라고 하는 것뿐이고요. (274쪽)
오랫동안 자유를 위해 많은 이들이 싸워 이제는 많은 것이 자유로워졌지만, 이제는 자유라는 개념이 왜곡되고 변질된 것이 아닐까란 생각이 들어 자유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할 수 있는 기회가 되었다.
이처럼 지금 사용되기도 하고 앞으로도 개발되어 적용될 수 있는 많은 과학 기술들이 등장하는 소설이지만 적지 않은 생각거리를 던져주고 있기에 한 편 한 편 곱씹으며 읽을 수 있는 『은랑전』이었다. 다음에는 어떤 말로 이야기를 빗을지 기대가 되는 이유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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