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저자
- 방민호
- 출판
- 다산책방
- 출판일
- 2015.01.12
1. 읽기 전에
(1) 저자 소개 - 방민호
대학 입학과 함께 서울로 올라와 수학하며 한국 현대 문학을 전공했고, 서울이라는 공간과 작가·작품의 관계 양상에 관심을 갖고 탐구해 왔다. 1994년 《창작과비평》 제1회 신인평론상을 수상하며 비평 활동을 시작했고, 문학평론집 『비평의 도그마를 넘어』, 『납함 아래의 침묵』, 『행인의 독법』, 『감각과 언어의 크레바스』, 『문학사의 비평적 탐구』, 『한국비평에 다시 묻는다』가 있다. 연구서로는 『채만식과 조선적 근대문학의 구상』, 『한국 전후문학과 세대』, 『일제말기 한국문학의 담론과 텍스트』, 『이상 문학의 방법론적 독해』, 『한국문학과 일본문학의 ‘전후’』, 『이광수 문학의 심층적 독해』가 있으며, 함께 펴낸 저서로는 『최인훈, 오디세우스의 항해』, 『탈북문학의 도전과 실험』 등이 있다.
(2) 연인 심청 차례

2. 연인 심청
심봉사와 심봉사의 눈을 뜨게 하기 위하여 공양미 삼백 석에 인당수로 팔려가는 심청의 이야기를 그린 <심청전>은 할머니의 옛날이야기든, 그림이 가득한 전래동화집이든, 그것도 아니면 구전동화에서든 어려서부터 익히 보고 들어온 친숙한 이야기이다. 하지만 어린 시절 스쳐 지나가 듯 어렴풋한 기억 속에 존재하는 <심청전>은 그저 효성 어린 딸로 인해 눈을 뜨는 심봉사의 내용을 그린 지극히 유교윤리의 틀 속에 갇힌 이야기일 따름이었다. 그래서 처음 『연인 심청』을 접했을 때에도 그러한 선입견이 분명히 자리 잡고 있었다. 하지만 읽어 갈수록 지구에서는 볼 수 없는 달의 반대편 모습을 본 것과 같이 심청의 새로운 면을 많이 부각되어 새로운 재미가 있었다. 심청이 공양미 삼백 석으로 인해 인당수에 빠지고, 우여곡절 끝에 심봉사의 눈을 뜨게 한다는 큰 줄기는 변함이 없지만 그동안 알고 있던 <심청전>과는 다른 『연인 심청』만의 묘미가 등장인물 및 주제와 제목에 두루 얽혀 있었다.
지금 와서 생각해 보면 어려서부터 읽고 들어온 수많은 전래동화들 가운데 유독 <심청전>이 그다지 깊은 인상을 남기지 못한 것은 등장인물들의 ‘색(色)’때문인 것 같다. 색(色)도 보색관계의 색과 같이 있을 때 더욱더 선명하듯이 이야기를 이끌어가는 등장인물들도 각자 자신만의 색과 대립하는 보색인 인물과 얽혀 이야기를 이끈다면 자신은 물론이거니와 상대방도 더 돋보이게 되는 것인데 <심청전>에서는 그러한 인물이 없었다.
비록 뺑덕어멈이 등장하긴 하지만 심청과 대립하는 역할이라기보다 심청이가 떠나고 심봉사의 처지를 더욱 나락으로 빠뜨리는 악역인 인물이기에, 자칫 무능의 대명사로 비칠 수 있는 흥부를 어진 동생으로 부각해 주는<흥부전>의 ‘놀부’나 느리고 어리숙하지만 묵묵히 자신의 소임을 다하는 자라와 상반되는 <별주부전>의 ‘토끼’처럼, 주인공과 대립각을 세우거나 그와 정반대의 성향을 가진 인물들의 부재가 이야기의 긴장감과 긴박감을 감하는 요인이 되어 선명한 기억을 남기지 못했을 것 같다는 추측을 해 볼 수 있었다. 하지만 『연인 심청』에는 비록 심청과의 적대관계로 긴장감을 고조시키는 인물은 아니지만 그녀의 가치관과 상반되는 인물들이 등장하는데 바로 심청의 아버지 ‘심학규’와 그녀의 연인인 ‘윤상이’이다.
가세가 기울고 눈까지 멀어버린 몰락한 양반, 잔반(殘班)인 심학규는 하루 종일 아무것도 하지 않고 공자, 맹자를 찾으며 젊을 때 읽던 책을 기억하는데만 열을 올린다. 게다가 이런 생활이 답답한 듯 투전판에도 기웃거리는 등 점점 타락의 나락으로 빠지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신은 눈만 뜨게 되면 입신하여 나라의 부름을 받을 것이라는 헛된 희망을 품고 하루하루를 살아간다. 하지만 이것도 지금의 처지를 벗어나고자 하여 품는 헛된 희망일 뿐 그의 젊은 시절을 엿볼 수 있는 동네 아낙들의 뒷말이나 동네소문들, 자신이 그렇게 살아왔기 때문에 갑자기 눈이 멀어버렸다고 하는 심봉사의 한탄 속에서 그가 그리 떳떳한 삶을 살아온 것이 아님을 알 수 있다. 그런 그에게 심청은 세상을 살아갈 수 있는 유일한 창구이자 방법이지만, 공양미 삼백 석을 부처님께 진상하면 눈을 뜰 수 있다는 화주승의 말을 듣고는 그나마 자신을 양반으로 대접해 주고, 자신과 같은 양반의 신분이라는 이유로 장 상서 댁 수양손녀로 보내 공양미를 마련하겠다는 계획을 세우기까지 한다.
공양미 삼백 석을 마련하기 위해 전전긍긍하다 이런 생각까지 하면서 잠에 든 심봉사의 초췌한 모습을 보면서 심청이 마음의 결심을 하는 대목의‘지난 세월을 돌이켜보면 청이는 아버지를 마음 깊은 곳에서 미워하면서 살아왔는지도 모르겠다. 비록 사람들에게는 효성스러운 칭찬을 귀에 못이 박이도록 들었지만 꼭꼭 숨겨둔 진짜 자기 마음은 아버지를 너무나 원망하고 부끄럽게 여겨왔던 것이다. 시도 때도 없이 머리를 쳐드는 혐오감, 불쾌감을 누그러뜨리느라 청이의 속마음은 불탄 숯처럼 시커멓게 변해버린 지 오래였다'라는 구절은 어렵지 않게 공감할 수 있었다. 아무리 일찍 철이 들고 효성스럽다고는 하나 겨우 열다섯의 어린 나이로 현실감각이 전혀 없는 아버지를 모시면서 살아가는 심청을 생각해 볼 때 자연스러운 것 일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자신의 마지막 소임이라 생각하면서 인당수에 팔려가는 결심을 하는 심청은 현실감각 없이 그저 자신의 입신영달만을 꿈꾸는 심학규와 좋은 대비가 되었다.
뿐만 아니라 공양미 삼백 석 외에 심청의 딱한 처지를 생각해 남은 여생을 살아갈 수 있게 뱃사람들이 백 석이 넘는 돈을 더 남겨주고 갔지만, 이것을 애랑이란 기생에게 빠져 탕진하고는 공양미까지 부처님께 마음으로 정성으로 빌면 된다는 궤변으로 절반을 다시 가져와 뺑덕어멈의 간계에 빠져 모조리 잃는 한결같은 심봉사의 모습을 보면 그가 그저 심청에 의해 눈 뜨게 되는 도움만을 받는 인물이 아니라 심청을 더 돋보이게 하는 보색(補色)같은 존재인 것을 알 수 있다.
이와 같이 한결같은 심학규 이외에도 『연인 심청』을 통해 처음 알게 된 ‘윤상이’도 흥미로운 인물이었다. 장 상서 댁 큰아들의 얼자인 윤상이는 어릴 때부터 영특함을 보이지만 아버지의 외면으로 인하여 비장한 우울을 가지며 성장한다. 심청을 딸처럼 돌보아주는 귀덕어멈의 아들 귀덕이와 같이 셋이서 성장하면서 심청의 마음은 귀덕어멈의 바람과는 다르게 같은 슬픔을 가진 윤상이에게 이끌린다. 같은 슬픔을 안고 성장하지만 윤상은 심청과는 달리 그에게 주어진 운명을 그대로 받아들이는 인물이 아니었다. 그런 그였기에 자신에게 시집을 오라는 프로포즈에 아버지 때문에 머뭇거리기만 하는 심청이 답답하기도 하고, 야속하기도 하였다. 심지어 심청이 인당수로 팔려간다는 고백을 하자, “그깟 아비가 뭐라고. 눈만 먼 게 아니라 사리분별도 못하는 늙은이가 뭐라고 네가 목숨을 바치느냐구.”라고 역정을 내면서 서운함을 표출하기도 한다.
다가갈수록 운명이라는 커다란 굴레에서 자꾸만 엇갈려가는 심청이 못내 야속하기도 할 법한데 윤상이는 끝까지 심청의 곁을 지키고 그녀를 위해 죽음을 택한다. 자신의 운명이라 받아들이고 죽음을 택하는 심청은 연꽃 속에서 다시 환생을 하는데 반하여 자신의 운명에 맞서 사랑을 지키려는 윤상이는 오히려 비참히 죽어가는 것이 아이러니하기까지 하였다. 그렇기 때문에 “자신이 세상을 버리는 것”이라는 윤상이의 마지막 말은 더욱더 날카로웠다.
지금껏 알고 있던 <심청전>과 달리 『연인 심청』으로 다시금 알게 된 것은 ‘운명’과 ‘선택’이라는 단어의 무거움이다.
에필로그에서 작가가 밝혔듯이 운명은 하늘이 정한 운명대로 살아갈 수밖에 없다고 믿는 숙명론(宿命論)과 정성과 의지로써 타고난 운명조차 바꾸어갈 수 있다고 믿는 조명론(造命論) 이렇게 크게 둘로 나눌 수 있는데, 심청과 윤상이가 각각 숙명론자과 조명론자의 삶을 보여주고 있다. 개인적으로 부딪혀 깨지더라도 운명을 바꾸어 가는 조명론의 삶이 더 많이 나타났으면 하지만, 공양미 삼백 석이면 눈을 뜰 수 있다는 이야기를 듣고 난 뒤 뱃사람의 삼백 석으로 인당수의 제수를 찾는다는 소식이 들려온다든지, 심청이 떠나간 틈으로 애랑과 뺑덕어멈이 파고들어 더욱 몰락해 가는 심학규의 기구한 삶, 그리고 꽃과 나무를 가꾸며 인생의 황혼을 살아가는 고려왕이 뜻을 바꾸어 연꽃 속에서 부활한 심청을 왕비로 맞이한다는 등 곳곳에 숙명론적인 요소를 많이 내포하고 있었다.
이러한 심청의 숙명론을 『연인 심청』은 선계의 선녀의 환생으로 풀어 가는데, 상제의 탕약을 담당하는 선녀 유리는 선관 유형에게 마음을 빼앗기고 그 탕약을 조금 덜어 유형에게 전하는 죄를 범한다. 이에 판관은 사랑이 죄를 짓게 하였으니 유리와 유형에게 남자와 여자로서 사랑을 할 수 없고 아버지와 딸로 의지하며 살아가되, 유형에게는 평생 얻어먹으며 살아가도록 하고 유리에게는 평생 받들어 바치며 살아가게 하는 벌을 내린다. 심학규의 내일만 바라보는 허무맹랑한 삶이나 그와 반대로 아버지를 받들어 살아가는 것을 자신의 운명이라 여기는 심청의 삶이 바로 이러한 운명 때문이라는 것이다. 부처님의 공양미로 심청이 팔려가고 연꽃 속에서 부활을 하는 등 전체적으로 불교적인 색채가 짙은 만큼, 심청을 통해 불교의 연기설 속의 운명과 인연이라는 것을 다시금 생각해 볼 수 있었다.
심청이 아버지에게 자신의 삶을 바치는 것이 ‘운명’이라면, 심청의 윤상이에 대한 연정은 ‘선택’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심청의 선택은 심청을 마음에 품고 살아가는 윤상이의 처음 고백을 아버지 때문에 도리질 치는 것부터 시작하여 인당수로 가는 배를 타기 전 그에게 털어놓는 때에도 나타나지만 가장 도드라지게 나타나는 대목은 소설의 마지막 심학규와 윤상이의 절체절명의 순간이다. 바로 심청과 심학규가 상봉을 하는 대목인데, 연꽃 속에서 다시 태어난 심청은 고려의 왕비가 되어 아버지를 찾기 위해 맹인들을 위한 잔치를 연다. 다행히 극적으로 잔치의 마지막 날 아버지를 만나지만, 그동안 심청이 없이 혼자서 피폐하게 살아왔던 심봉사는 눈을 뜸과 동시에 쓰러진다. 이에 심청은 아버지를 극진히 간호를 한다. 바로 이때 윤상이는 심청에게 왕비의 자리를 빼앗겼다고 시기하는 희빈의 모함을 받아 모진 고문을 받으며 생사의 기로에 서 있게 된다. 이 소식을 들은 심청은 윤상이와 아버지 사이에서 고민하지만, 결국 아버지의 간호를 선택하고 윤상은 고문 끝에 세상을 떠난다. 비록 자신의 사랑을 위해 세상을 떠났지만 그 한이 어찌나 큰지 윤상의 상여는 움직이지 않고, ‘오라버니는 이 땅에서 자신을 구하고 떠나지만, 자신에게 주어진 운명은 오라버니를 사랑하고 그 속에서 행복을 찾는 것이 아니라 아버지를 구하는 것이었기에 이리 엇갈리지만 다음 생에서는 새롭게 인연을 이어나가자’는 심청의 마음을 듣고 나서야 상여가 비로소 움직인다.
비록 죽음이라는 비극으로 끝이 나지만, 윤상이는 윤상이대로 얼자로 태어난 운명을 딛고 심청을 사랑하고 그녀를 지켜주는 삶을 선택했다고 볼 수 있다. 자신과 떠날 수 없다는 심청을 따라 자신도 배를 탔던 것 하며, 인당수에서 심청을 품은 연꽃을 가장 먼저 발견하고 그것을 왕궁으로 진상을 하면서 왕궁의 궁지기를 자처했던 것을 보면 윤상이도 나름의 선택을 한 것이다. 비록 극히 제한된 선택으로 윤상이가 선택할 수 있는 것이 몇 가지 없었다는 것이 씁쓸하지만 말이다. 자신이 선택할 수 있는 심청에 대한 사랑의 선택이 죽음이었기에 “돌아올 수만 있다면, 내 다시 돌아올 것이요. 이렇듯 반상이 다르고 귀천이 다른 세상 말고, 사람사람이 하나같이 귀한 세상에 말이오."라는 그의 마지막 외침이 더욱 한스러워 보였다.
소설의 말미에서 윤상이를 떠나보내고, 심학규도 떠나보내고 나니 제목이 왜 『연인 심청』인지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널리 알려져 있듯 『심청전』은 ‘효녀’ 심청의 이야기이므로, ‘효’에 관한 이야기에 왜‘연인’이란 제목과 함께 ‘사랑으로 죽다’라는 부제까지 달고 있을까란 생각이 인당수의 물속과 같은 파란 표지를 보고는 가장 먼저 든 궁금증이었는데 말이다. 자기를 버리고 남을 위하는 이타적인 사랑을 황폐해진 세계를 구할 수 있는 해결책으로 제시하고 있는 작가는 이러한 심청을 윤상이의 연인으로, 심학규의 연인으로 더 나아가 만인의 이상적인 연인상으로 그리고 있다. 심청과 같이 자신의 삶을 송두리째 내 던지는 ‘사랑으로 죽는’ 방법까지는 조금 과하다는 생각이나, 자신이 사랑하는 이를 사랑으로 변화시키려는 심청을 보면서 왜 그녀가 사랑으로 죽었고, 『연인 심청』으로 다시 태어났는지 어렴풋이 짐작할 수 있었다. 이렇듯 심청과 같은 이타적인 사랑은 분명 많은 것을 변화시킬 수 있을 것이다.
조금은 과할 정도로 자기만의 색을 분명히 보여주는 심학규와 윤상이, 그들 모두의 연인이 되고 싶은 심청의 인연을 통해 엿볼 수 있는 운명과 선택에 대한 새로운 시각은 소설을 처음 접했을 때의 익숙함에서 오는 선입견을 모두 날려버릴 수 있어 『연인 심청』은 처음과 달리 새롭고 신선한 소설이 되었다.
흔히 익숙한 포맷을 깨는 것은 어렵다고 한다. 그 포맷이 유명하고 잘 알려져 있는 것이라면 더욱 그렇다. 분명 <심청전>은 우리에게 익숙한 포맷이다. 그렇기 때문에 『연인 심청』은 처음부터 효녀이야기라는 선입견과 맞서야 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효녀이야기라는 익숙함을 벗고 마치 운명처럼 만인의 연인으로 진화한 심청의 이야기는 나와 같이 심청에 대한 익숙함의 선입견을 쓰고 있는 이들에게 운명과 선택, 그리고 사랑에 대해서 다시금 생각할 수 있는 좋은 계기가 될 것 같다.
'소설 > 한국소설' 카테고리의 다른 글
| 작별인사 - 죽을 수밖에 없는 존재이기 때문에, 생이 한 번뿐이기 때문에 인간들에게는 모든 것이 절실했던 것이다 (39) | 2025.03.07 |
|---|---|
|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 - 우리는 점점 더 우주에 존재하는 외로움의 총합을 늘려갈 뿐인 게 아닌가? (58) | 2025.03.06 |
| 당연하게도 나는 너를 - 한 소년의 실종 속에 감춰진 가스라이팅 (3) | 2025.02.26 |
| 나프탈렌 - 많은 죽음 속에서 엿볼 수 있는 삶 (4) | 2025.01.30 |
| 아라의 소설 - 보편적이면서 보편적이지 않은 디테일들 (3) | 2025.01.1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