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 읽기 전에
(1) 작가 소개 - 김초엽
2017년 제2회 한국과학문학상 중단편 대상 및 가작을 수상하며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소설집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 『방금 떠나온 세계』, 중편소설 『므레모사』, 장편소설 『지구 끝의 온실』 『파견자들』, 논픽션 『사이보그가 되다』(공저), 산문집 『책과 우연들』 『아무튼, SF게임』 등을 냈다.
(2) 차례

2.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
작가나 영화감독을 기억하는 것보다 그들의 대표작을 기억하는 것이 더 쉽다. 창작자의 입장에서는 그것을 뛰어넘는 작품을 만들어 내야 하는 도전과제가 되겠지만 그것을 소비하고 즐긴 입장으로서 그저 즐겁기만 한 일이다. 영화 <마녀>, <낙원의 밤>을 재미있게 봤지만 역시 나에게 박훈정 감독의 대표작은 <신세계>다. 보는 사람마다 취향과 성향이 달라 호불호가 갈리는 것을 어쩔 수 없는 일이지 이렇게 내가 좋아하는 창작자들의 대표작을 나열해 보는 것도 재미있는 일인 것 같다. 나에게 『지구 끝의 온실』, 『파견자들』 등 여러 소설을 낸 김초엽 작가의 대표작은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이다.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에는 작가가 처음 쓴 소설을 비롯하여 총 7편의 단편소설로 구성되어 있다. 책의 제목인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도 그 소설 중 하나이다.
(1) 순례자들은 왜 돌아오지 않는가
‘순례자들은 왜 돌아오지 않는가’는 소피에게 보낸 데이지의 편지로 이루어져 있다. 그 편지글 중에서 눈에 띄는 문장이 있다.
왜 책 속의 세계에는 갈등과 고난과 전쟁이 있는데 이 마을은 이렇게나 평온한 걸까?
……
떠난 순례자들은 왜 돌아오지 않을까? (18쪽)
미래의 갈등과 고난이 없는 유토피아적인 마을의 구성원인 데이지는 성년이 되면 시초지로 떠난 순례자들이 돌아오지 않는 것에 대해 의문이 가지고 성년이 되기 전에 지구로의 떠나려고 한다. 이유는 단순하다.
우리는 행복하지만 그 행복의 근원을 모른다는 것. (19쪽)
이윽고 떠난 데이지는 그곳에서 신인류를 만든 바이오 해커에 대해 알게 되고 자신들의 마을에 대한 비밀을 파헤치기 시작한다. 바이오 해커와 기계자궁에서 태어난 만들어진 인류라는 설정이 흥미로웠다. 이러니 순례를 떠난 이들이 돌아오지 않는 이유가 있는 법인 것 같다.
(2) 스펙트럼
정말로 우리는 혼자인가? 이 넓은 우주에 정말 우리뿐인가? (60쪽)
‘스펙트럼’은 물음으로 소설로 표현함에 어울리는 단편이다. 스카이랩의 생물학자 희진은 우주탐사를 나서고는 조난을 당한다. 실종된 지 40년 만에 돌아온 희진은 항해 중 우연히 만난 행성에서 외계인을 만난다. 그곳에서 루이라는 무리인과 가까워지는데 이들은 수명이 3년에서 5년으로 짧았다. 하지만 루이의 장례를 치르고 나면 다음의 루이라는 무리인이 나타나 희진을 전처럼 대해주곤 한다. 수명을 다한 이의 기억을 이어받는 일종의 윤회와 같은 일이 일어나는 것이다. 색채라는 매개체로 이어진다는 설정이 흥미로웠다.
(3) 공생 가설
좋은 기억이든 싫은 기억이든 유년시절의 기억은 누구나 가지고 있지만 어느 순간의 이전 기억은 기억을 하지 못하는 일이 대부분이다. 생각-표현 전환 기술을 연구하는 브레인 머신 인터페이스 연구팀은 활성화된 뉴런의 패턴을 읽어 영유아 아이들의 생각을 읽는데 성공한다.
하지만 그 생각이 ‘어떻게 하면 더 윤리성을 부여할 수 있을까’라든지 ‘다들 거기에 잘 계신가요?’라는 영유아가 생각할 수 없는 것들이다. 이에 먼 옛날 원생생물이던 미토콘드리아가 동물 세포에 들어와 영양분과 산소를 받고 에너지를 만들어 내어주는 공생관계를 유지해 온 가설을 토대로 외계의 생명체가 영유아의 기억에 들어와 한동안 공생을 한다는 설정이다. 일곱 살 전후로 그들이 떠나기에 그 전을 기억하지 못한다고 하는 것이 재미있다.
(4)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
표제작인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은 급속냉동, 웜홀, 우주여행 등 그야말로 SF적인 요소가 많이 등장하지만 저자는 요양원 노인들이 시설을 나와 길을 잃는 것을 막기 위해 설치되었다는 독일의 ‘가짜 버스 정류장’에 대한 기사를 보고 이야기를 떠올렸다고 한다.
짧은 수명을 가진 인간이 긴 우주여행을 가능케 하는 기술인 냉동 수면을 연구한 안나는 연구 발표로 인해 가족과 함께 마지막 슬렌포니아로 떠나는 우주선에 탑승을 하지 못한다. 한 때 슬렌포니아는 가까운 우주였는데, 웜홀 항법이 도입되면서 순식간에 ‘먼 우주’가 되어버려 그곳으로의 항해는 이제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고속철이 개발되어 지선이 폐쇄되는 것 같은 일이 벌어진 것이다. 이에 안나는 주기적으로 정거장에 찾아와 슬렌포니아로 떠나는 우주선을 기다리지만 매번 허탕을 친다. 결국 정거장을 관리하는 직원을 속이고 자신의 구식 우주선으로 떠나는 이야기이다. 높은 확률로 그녀는 슬렌포니아에 도착을 할 수 없고 혹시나 기적적으로 도착을 한다고 해도 가족들은 이미 세상을 모두 떠났을 만큼 오랜 시간이 흘렀음에도 안나의 말은 기억에 남았다.
나는 내가 가야 할 곳을 정확히 알고 있어. (187쪽)
(5) 감정의 물성
우리의 감정 자체를 조형화한 제품인 이모셔널 솔리드가 소재인 ‘감정의 물성’은 7편의 소설 중 가장 재미있게 읽은 소설이다. 감정을 형상화해서 지닐 수 있다는 설정이 인상적인데 그중 우울감이나 공포 등 부정적인 감정이 가장 많이 팔린다는 것도 재미있다. 후배 유진은 이모셔널 솔리드에 대해 이렇게 이야기를 한다.
다들 쓰지 않아도 그냥 그 감정을 소유하고 싶어 하는 거예요. 언제든 손안에 있는, 통제할 수 있는 감정 같은 거죠. (204쪽)
우리가 종종 통제할 수 없는 우울이나 공포, 증오 등의 부정적인 감정을 형상화하여 그것을 통제할 수 있음을 느끼며 실제로 감정을 바라볼 수 있다면 재미있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해 보았다.
(6) 관내분실
여기서 관은 도서관이다. 하지만 책이 아니라 마인드라는 데이터가 보관된 곳이다. 이 마인드는 고인이 살아생전 좋아하던 것이나 추억 등을 전산화한 것으로 이 마인드를 보관하는 도서관은 일종의 추모공간이 되는 셈이다. 이 곳에서 지민은 엄마의 인덱스가 분실되었다는 이야기를 듣는다. 그러니까 마인드는 도서관 내에 존재하지만 인덱스가 분실되어 찾을 수가 없다는 것이다. 이 인덱스를 복구하는 과정에서 지민은 엄마에 대해 너무 몰랐다는 점을 깨닫는다. 엄마라는 가장 따뜻한 존재의 이야기이기에 지민의 생각이 오랫동안 기억에 남았다.
자신을 고유하게 만드는 그 무언가를 남길 수 있었다면. 그러면 그녀는 그 깊은 바다에서 다시 걸어 나올 수 있지 않았을까. 그녀를 규정할 장소와 이름이 집이라는 울타리 밖에 하나라도 있었다면. 그녀를 붙잡아줄 단 하나의 끈이라도 세상과 연결되어 있었더라면. 그래도 엄마는 분실되었을까, (265쪽)
(7) 나의 우주 영웅에 관하여
마지막 ‘나의 우주 영웅에 관하여’는 우주 탐사를 위해 자신의 몸을 개조는 우주비행사 과정을 신청한 재경의 이야기이다. 그녀에게는 자신의 우주 영웅 이모가 있는데 그녀는 자신의 기억과는 다른 삶을 살았던 것을 알게 된다. 그러한 재경과 이모의 이야기보다 ‘우주 저편을 보기 위해서 인간이 본래의 신체를 포기해야 한다면, 그것은 여전히 인간의 성취일까? (281쪽)’라는 한 가지 물음이 더 기억에 남았다.
7편 모두 미래를 배경으로 인공동면, 우주탐사, 외계인과의 조우 등 다양한 과학기술이 등장한다. 하지만 아무리 과학 기술이 발달하고 우주로의 시선을 돌려도 인간은 인간다움 삶이 필요하다는 것을 그리고 있다. 이를테면 행복이나 부모님을 비롯한 가족과 같은 가치들 말이다. 그래서인지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의 안나의 말이 더욱 와닿는다..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조차 없다면, 같은 우주라는 개념이 대체 무슨 의미가 있나? …… 우리는 점점 더 우주에 존재하는 외로움의 총합을 늘려갈 뿐인 게 아닌가. (181-18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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